혹시, 우리 회사에 스파이가 있나?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이 매뉴얼은 1944년에 미국의 정보기관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가 만든 것입니다. OSS는 1945년 해체되었지만, 그들의 주요 활동은 적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 및 사보타주 작전을 수행하는 기관이었고, 그들의 주요 활동은 CIA로 이전 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매뉴얼은 적국에 잠입했을 때, 생산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행동지침 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단체 및 회의, 관리자, 사무직, 종업원 일 때 생산성 감소를 유도하기 위한 행동 지침 총 50가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문서에 적혀 있는 행동 지침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일부 원문에 나타난 행동 지침은 당시 산업의 주류인 2차 산업에 상당수 맞춰져 있지만, 조직 관리라는 큰 측면에서 특정 산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주요 내용을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1. 빠른 의사 결정을 위한 지름길을 허용하지 말고, 어떠한 일이던 보고 채널을 반드시 지키도록 강요하라.

2. (사안의 중요성과 별개로) 가능한 모든 문제를 위원회에서 검토하게 하며, 위원회는 가능한 크게 만들려고 시도하라.

3. 최대한 자주 관련성 없는 사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라.

4. 최대한 자주 회의를 열어라

5. 마지막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을 다시 검토하고, 그 결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라.

6. 모든 명령은 서면으로 요구하라.

7. 업무상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회의를 열게 한다. 

8. 업무를 할당할 때, 중요도가 낮은 일을 먼저 정하고, 중요한 것은 비효율적인 사람을 배치한다.

9.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은 것에 완벽한 작업을 요구한다.

10. 업무 승인 절차를 복잡하게 한다. 간단한 일에도 3명 이상의 승인이 필수가 되도록 유도한다.

11. 문서의 양을 늘려라.

12. 신입사원을 훈련 시킬 때는 불완전하거나 애매한 지시를 내린다.

13. 신입이나 숙련이 덜된 직원에게 기술이나 경험을 전달하지 마라.

… 

 이 문서가 만들어진 이후로 반세기가 넘게 지났지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매뉴얼의 행동 지침은 크게 4가지로 분류되어 있는데 조직 및 회의와 관리자의 행동 지침은 현재 많은 조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입장을 바꿔 만약 내가 스파이라면 이 매뉴얼을 정직하게 수행함으로써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은 무엇일까요?

 바로 조직의 경직성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회의, 회의 자체의 생산성 문제, 의사결정의 복잡성, 절차 만을 강조하는 문화, 모호한 업무 우선순위 등이 조직의 경직성에서 나타내는 하나의 현상들입니다. 마치 적의 사보타주 작전에 당한 듯이 아직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들이 안고 있는 문제일 것 입니다. 최근 국내 이름난 기업들의 조직 문화 변화의 방향이 유연성 확보에 맞춰져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속한 조직 내 경직성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해야 될 숙제임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조직문화에 대한 부러움을 사고 있는 몇몇 미국의 유니콘 기업들 뿐만 아니라 국내에 최근 몇 년 새 등장한 스타트업들은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유연하게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보다 그들이 가진 유연한 조직 문화가 더 주목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주목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지 신선함 만은 아닐 것 입니다. 유연성과 연결되는 창조성과 그리고 창조성으로 이어지는 기업의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