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어떤 것을 생각하지 마”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을 듣는 상대방은 오히려 그 “어떤 것”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려진 “어떤 것”에 대한 이미지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강하게 자리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렇듯 외부 자극에 의해 떠오른 특정한 이미지는 매우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된다. 그렇다면 마케터에게 자주 주어지는 외부 자극은 무엇일까?
구체적인 순위를 매길 순 없지만 마케터에게 강조되는 여러 가지 능력 중에서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은 바로 공감능력일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고객과 접점 채널이 매우 다양화된 세상에서는 마케터의 공감능력은 고객과의 관계 강화에 필요한 속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마케터들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강요받는다.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마케터가 존재는 할 수 있을까?
그런데 한 연구결과는 우리가 생각하는 통념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영국 임페리얼대 요하네스 하툴라(Johannes Hattula) 교수와 그의 연구진이 진행한 실험이다.
그는 여러 상황에 대한 실험에서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 주세요’ 부탁을 한 경우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고객의 욕구에 대한 예측이 마케터의 개인적 선호도와 더 비슷해진다는 결과 얻었고, 실험 대상자들의 공감 능력 테스트를 해본 결과 공감 수준이 높은 마케터 일 수록 자기중심적 편향을 보였다는 점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거의 대부분의 마케터들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믿고 의사결정을 한다. 만약 제공된 객관적인 데이터가 틀렸거나, 자기중심적 편향에 따른 의사결정이 대상 고객과 운 좋게 일치할 경우를 제외하면 자기중심적 편향이 반영된 의사결정이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복권을 사는 것과 같다.
하텔라 교수는 이러한 결론이 발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마케터는 직업적인 마케팅 전문가라는 정체성과 소비자 입장인 개인적 정체성의 두 가지가 있는데,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는 자극을 받게 되면 소비자 정체성이 활성화된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그려진 이미지의 강력함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했을 때, 머릿속 이미지로 그려지는 코끼리의 모습과 유사하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해 달라는 요구에 공감능력이 높은 마케터일수록 실험 상황에서 마치 자기가 고객인 것처럼 상상하게 되고, 그러한 상상이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져 이후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미지로 그려진 모습은 객관적인 데이터도 무시할 만큼 강력하다.
그렇다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위 실험은 철저히 개인적인 상황에 대한 테스트이다. 중요한 것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발생하는 자기중심적 편향을 어떻게 통제하는가에 달려 있다. 여기에 빠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첫 번째, 집단의 힘을 이용하는 것
여러 사람과 함께 회의를 하게 되면 내가 가진 생각과 다른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된다. 다양한 의견이 융합될수록 자기중심적 편향에서 벗어날 확률이 높다. 요즘은 일부러 회의 때 반대 의견을 내도록 하는 역할도 지정하는 경우도 있는데 매우 좋은 방법이다.
두 번째, 스스로 자기중심적 편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인식하는 것
스스로 자기중심적 편향에 빠질 수 있는다는 사실만 인지해도 큰 도움이 된다. 실험에서 자기중심적 편향에 대한 설명을 들은 마케터는 동일한 상황에서 자기중심적 편향이 낮아지는 결과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마케터의 숙명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 시작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이 이 실험은 많은 마케터들에게 괜찮은 시사점을 준다. 자기중심적(egocentric) 편향이 언제 우리 머릿속에 가득 찰지 모르기 때문이다.
egocentric is the enemy.
*커버이미지 : Unsplash의Toa Hefti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