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분야 중 하나가 광고인 사람들은 아마도 코카콜라와 팹시가 벌여 온 광고 전쟁을 잘 알 것이다. 이런 광고 전쟁은 보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는 하나의 장르이다.
펩시의 도발과 코카콜라의 반격. <할로윈 광고> 펩시 “무서운 할로윈이 되길 바랄께!” 에 답한 코카콜라 “모두가 영웅이 되길 희망한다.”
보통은 먼저 도발을 거는 쪽은 시장에서 밀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하게도 1등이 굳이 자신보다 뒤에 있는 브랜드를 향해 거들먹 거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위트 있는 도발은 위트 있는 반격이 있어야 보는 입장에서 즐겁다.
최근 삼성은 북미 시장에 애플을 도발하는 두 번째 광고를 선보였다.
첫 번째 도발 영상은 Samsung Galaxy : Growing Up이란 이름으로 노치 디자인을 조롱하는 영상으로 당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전체적인 내용도 애플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잘 지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재가 된 노치 컷 (Notch Cut)
특히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일명 노치 컷 아재는 당시 아이폰 X 발표 직후 노치 디자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호감보다는 비호감이 더 많았던 점을 고려하면 묵직한 한방이었다. 이 영상은 유튜브 공식 채널 기준 2,600만 뷰 이상을 기록했으며, 이것은 공식 채널의 여타 콘텐츠에 비해 압도적이다.
삼성은 이 여세를 몰아 Samsung Galaxy: Moving On이라는 두 번째 영상을 최근 공개했다.
영상은 아이폰6를 사용하고 있는 주인공이 일상에서 느려진 아이폰6로 곤욕을 치른다는 내용이다. 이 영상은 얼마 전 이슈가 되었던 애플의 고의 성능 저하를 문제삼았다. 애플은 배터리 상태에 맞춰 아이폰의 성능을 제한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곤혹을 치렀다.
공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영상은 현재 600만 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 영상의 반응은 전편보다 뜨겁다. 그러한 이유는 영상의 내용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추세가 전편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첫 번째 영상은 나 같은 애플 사용자조차도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여론 또한 노치 디자인에 대한 낯선 이미지와 아이폰 X의 가격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새로운 영상은 마치 3세대 전 모델인 아이폰6보다 갤럭시 S9이 더 좋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그러한 반응이 존재한다.
삼성의 광고 제작자는 이런 반응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이폰6와 갤럭시 S9을 비교했을까?
새로운 영상의 핵심 메시지인 “갤럭시로 바뀌”를 끌어내기 위한 소재는 느려진 아이폰이다. 즉, 배터리 게이트라고 까지 불린 배터리 성능에 따른 고의 성능 저하 이슈를 저격한 것이다. 애플은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와 함께 아이폰6 이상 사용자에게 2018년 12월까지 50% 할인된 금액으로 배터리 교체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발표했다. 즉, 아이폰6 사용자가 배터리 게이트 보상의 마지노선인 것이다.
하지만 애플의 고의 성능 저하를 저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 이 캠페인의 목적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VS 삼성이라는 프레임 지키기이다.
애플 VS 삼성이라는 프레임 지키기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스마트폰 시장을 대표하는 두 개의 진영은 삼성 갤럭시와 애플의 아이폰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안드로이드 진영 VS 애플의 싸움으로 진영이 바뀌었다. 북미시장에서 갤럭시는 1분기 아이폰(34.9%)에 이어 점유율 2위(28.6%)를 기록했지만, 글로벌 점유율은 하락세에 있으며, 인도나 중국과 같은 빅마켓에서 삼성은 샤오미나 화웨이에 밀려난 상황이다. 여기에 구글도 자체 플레그십 모델인 픽셀을 꾸준히 출시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삼성은 이 프레임을 더 지켜야 할 필요성이 커 보인다.
소유 효과 자극
<소유 효과>란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이는 현상으로 객관적인 가치보다 소유자 스스로가 평가하는 가치가 더 높게 나타는 현상이다.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논쟁 중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아이폰 사용자와 갤럭시 사용자의 논쟁이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는 시점에서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소위 낡은 떡밥이다. “그냥 자기 편한 거 쓰는 거지”가 결론이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걸 보면 신기하기까지 하다.
이런 광고가 실제로 아이폰 사용자를 갤럭시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정확히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은 애플의 유저를 자극한다. 3세대 전 모델인 아이폰6를 등장시킴으로써 1편 영상에서 보여 준 그럴듯한 명분도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애플 유저들을 더 자극할만하다. 하지만 애플 유저의 비판을 지켜보기만 할 갤럭시 유저 혹은 범 안드로이드 유저들이 아니다. 이 영상은 각 진영 간의 소유 효과를 자극하는 참여도 높은 콘텐츠가 되었고, 애플 VS 갤럭시라는 프레임을 지키기에 좋은 수단이 된 셈이다.
노치 디자인 비판
노치 컷 아재가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등장한다. 전 편 영상에서 큰 화재가 된 장면으로 두 번째 영상에도 비슷하게 연출되었다. 출시된 지 몇 개월이 지난 아이폰 X를 저격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근 삼성을 제외한 안드로이드 진영 대부분(LG, 화웨이, 오포, 비보, 샤오미 등)이 노치 디자인을 채택한 것을 보면 단순히 아이폰 X만을 저격했다기보다는 노치 디자인에 대한 돌려 까기가 아닐까?
법적으로도 기나긴 소송 중에 있는 삼성과 애플이지만 사실 동반자 관계에 가깝다. 삼성의 진정한 적은 같은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애플을 제외한 모든 스마트폰 제조사이다. 아이폰이 삼성의 점유율을 흡수했다기보다는 다른 제조사에 빼앗겼다는 점을 많은 언론에서 지적한다. 당장 중국 시장만 봐도 그러한 분석은 설득력 있다.
삼성은 예전처럼 갤럭시 VS 아이폰의 구도가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랄 것이다. 각 진영의 사용자들이 삼성의 새로운 영상에 댓글로 참전하고 있지만 삼성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애플이 이 도발을 받아 주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애플은 이 도발에 응답할 가능성이 낮다. 경쟁사를 도발하는 광고는 도발을 당하는 쪽에서 위트 있게 받아줘야 비로소 하나의 캠페인이 완성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애플 입장에서 특별히 받아 칠 소스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삼성은 과거의 애플과 싸우는 듯 하지만 안드로이드 진영과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