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도 언캐니밸리가 있다.
올해 초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한국을 방문했다. 당시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모습이 큰 이슈가 되었다. 소피아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부여받은 최초의 로봇이다. 하지만 소피아의 놀라운 대화능력과는 별개로 외모가 약간은 섬뜩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
우리말로 불쾌한 골짜기인 이 용어는 인간이 인간과 닮은 것들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대한 이론이다. 언캐니 벨리를 보여주는 그래프를 간단히 그려보면 아래와 같다.
언캐니벨리에 빠졌다는 말은 애매한 유사성으로 거부감을 느낀다라는 말이다. 언캐니벨리는 인간을 닮아가고자 하는 로보틱스 분야에서 탄생한 개념이다. 하지만 이 개념은 과학적 증명이라고 볼 수 없고, 심리학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언캐니 벨리를 벗어난 끝부분. 즉, 그래프의 최우측 영역은 엄밀히 말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쾌함이라는 감정은 인간이 가진 복잡한 심리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케팅 콘텐츠도 언캐니벨리가 있다. 마케팅 콘텐츠의 언캐니벨리는 두 가지 범주로 생각된다. 하나는 맥락(Context)이고, 다른 하나는 기술(Technology)이다. 오늘은 맥락 관점에서 마케팅 콘텐츠의 언캐니벨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케팅 콘텐츠가 언캐니벨리에 빠졌을 때는 언제일까?
마케팅 콘텐츠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획자들은 타깃 세그먼트의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맥락에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를 연결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타깃이라고 불리는 고객 또는 잠재고객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타깃에 대한 높은 혹은 애매한 이해도는 자칫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언캐니벨리에 빠진 것이다.
“국방의 의무 축하해~ 드디어 멋진 남자 되는 거야~~ 정신 좀 차리겠구나~~~….”
대략 10년 전 논란이 되었던 광고의 가사다. 당시 이 광고는 많은 비난을 받았고, 출연한 여배우의 개인 홈피까지 악플로 도배가 될 정도였다. 이 콘텐츠가 비난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냉정하게 말하면 문제가 되었던 가사는 일상적 관계에선 흔한 맥락이다. 그리고 그 관계가 친밀할수록 더 짙어진다. 하지만 이것이 대중을 상대로 하는 마케팅 콘텐츠가 되었을 때는 불편해졌다. 언캐니벨리에 빠진 것이다.
왜 콘텐츠 언캐니벨리에 빠졌을까?
비난을 받은 이유가 특정 오디언스(Audience)에 대한 감수성 부족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다. 기획자가 스스로 해당 오디언스에 포함되어 있는 즉, 높은 이해도를 가진 경우에도 일어난다. 콘텐츠 기획자가 해당 오디언스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특정 타깃 집단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다는 말이다.
이해도가 높은 상태에서 일어난 가장 큰 이유는 마케팅 콘텐츠가 가진 맥락 전달의 한계 때문이다. 마케팅 콘텐츠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거나 시간적인 제한이 없더라도 긴 호흡에 대한 부담감이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두절미가 필요하다. 바로 이 과정에서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맥락이 사라진다.
문제가 된 가사 중 “정신 좀 차리겠구나”는 입대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수 없이 들었던 말이다. 일상에서 이 말의 맥락은 군입대에 대한 위로와 아쉬움이다. 하지만 친밀관계가 없는 사람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던진다면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친하지 않은 사람과 나와의 관계에는 어떤 맥락도 없기 때문이다.
언캐니 벨리에 빠진 마케팅 콘텐츠를 만든 제작자들은 사람들이 보인 불편한 반응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대화나 상황을 마케팅 콘텐츠로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에게 공감 또는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맥락 설명을 충분히 하지 못한 상태로 오디언스에게 제작자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이기려면 하얘지세요”
논란이 되었던 태국의 화장품 광고다. 알려진 대로 동남아 쪽은 미백 화장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이 광고는 최근 몇 년 동안 제작된 최악의 광고로 거론되는 것 중에 하나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논란도 있다.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결론지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진다. 하지만 노이즈 마케팅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이 광고는 태국에서 하얀 피부를 동경하는 사회적 배경을 담고 있다.
단지 감수성 측면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이 콘텐츠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특정 오디언스의 강력한 원츠(Wants)가 반영된 꾀나 높은 타깃 세그먼트에 대한 이해도를 가진 상태에 탄생한 것이다. 물론 이 콘텐츠는 보편적인 기준에서 차별또는 혐오적 요소가 담긴 매우 나쁜 콘텐츠이다.
논란이 되는 마케팅 콘텐츠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꾸준히 등장한다.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하기에는 지금의 디지털 환경이 가진 특성. 즉, 사라지지 않고 기록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없다. 거의 대부분의 노이즈 마케팅은 기업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특정 타깃에 대한 높은 이해도는 자칫 언캐니벨리에 빠질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로보틱스 분야가 인간을 닮아 가기 위한 노력의 과정처럼 특정 타깃들로 부터 호감을 사기 위해 던지 무리수 혹은 부작용과 같다.
만약 고의적으로 나쁜 목적의 마케팅이나 감수성 부족이 아니라면 말이다. 로보틱스 분야도 언캐니 벨리의 최우 측 영역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 영역은 어쩌면 밝혀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