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생명력을 가진 이야기는 무엇일까?
SNS를 이용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법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다. 꽤 긴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부를 담을 순 없지만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내 인생을 통해 얻는 부를 나는 가져갈 수 없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 뿐이다. 그 기억 들이야 말로 너를 따라다니고, 너와 함께하고, 지속할 힘과 빛을 주는 진정한 부이다. 사랑은 수천 마일을 넘어설 수 있다.
생에 한계는 없다. 가고 싶은 곳을 가라. 성취하고 싶은 높이를 성취해라. 이 모든 것이 너의 심장과 손에 달려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가 어떤 것이냐고? 병상이다. 차를 운전해주고 돈을 벌어줄 사람을 고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대신해 병을 앓아줄 사람은 구할 수 없다. 잃어버린 것들은 되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잃고 나서 절대 되찾을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으니…, ‘삶’이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마저 읽어야 할 책이 한 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건강한 삶에 관한 책’이다. 우리가 지금 삶의 어느 단계에 있든, 결국 커튼이 내려오는 날을 맞게 된다. 가족, 배우자, 친구들에 대한 사랑을 귀하게 여겨라. 당신 자신에 잘해라. 다른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라”
이 이야기는 역사상 가장 빠른 확산력을 가진 SN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고, 아이러니하게도 유명세 덕분에 공식적으로 스티브 잡스가 한 유언이 아니라고 밝혀졌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전히 누군가에 의해 SNS에 공유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고 있다.
거짓말로 밝혀진 스티브 잡스의 유언은 왜 지속적으로 공유되는가?
콘텐츠 관점
스티브 잡스의 유언은 거짓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흔드는 콘텐츠이다. 스티브 잡스는 한 시대의 아이콘이고, 그가 얻은 성공은 많은 사람들이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앙상한 모습의 사진과 공유되는 글은 어쩌면 그가 살았던 삶과 정 반대되는 이야기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치열함 속에 필요한 하나의 휴식과 같은 콘텐츠이고, 삶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준다.
여담이지만 위 사진이 없었다면 이 글은 그리 크게 퍼져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최초로 이야기를 만든 누군가가 사진을 보고 영감을 얻었을 수도 있다.
스티브 잡스의 유언만큼이나 SNS에 꾸준히 공유되는 스토리가 하나 더 있다. 어느 항공사의 이야기이다.
한 승객이 자신의 자리에 도착하자마자 화난 표정으로 승무원을 불렀다. 승무원이 와서 상황을 묻자, 승객은 “내 자리가 저 흑인 남자 옆자리잖아요. 난 저 남자 옆에 못 앉아요. 다른 자리 주세요.”라고 말했다. 승무원은 잠시 당황했다.”지금 자리가 다 차서 바꿀 수 있는 자리가 없습니다만. 다시 한번 확인해보겠습니다.”
얼마 후 돌아온 승무원이 말을 이어갔다. “손님, 기장과도 확인해보았지만 이코노미석에는 빈자리가 없네요. 지금은 일등석 자리밖에 빈자리가 없습니다. 저희 항공사는 일반적으론 이코노미석에서 일등석으로 자리를 옮겨드리는 경우가 없습니다만 지금과 같이 불쾌한 자리에 손님이 앉도록 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승무원은 흑인 남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손님, 짐 챙기시어 일등석으로 이동해주세요”
한 승객의 인종차별을 못 믿겠다는 듯이 쳐다보던 다른 사람들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은 1998년이라고 말하지만 이 조차도 정확한 것이라고 볼순 없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다양한 항공사의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글의 모티브는 인종차별이라는 혐오주의를 비판하는 것이다. (사실 위 이야기 자체도 문제가 있다. 유통되는 글의 가해자는 4–50대의 여성 승객이라고 묘사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혐오주의를 비판하지만 새로운 혐오를 조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글에선 수정했다.) 이쯤 되면 스티브 잡스의 유언도 나중에 다른 이름으로 재생산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미디어 관점
미디어의 본질은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가장 오래된 미디어는 소문이다.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나 어느 항공사의 이야기는 소문이라는 미디어의 본질적인 특성을 가졌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의 소문은 과거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사라진 휘발성
과거의 소문은 주로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어 휘발성이 강하다. 소문의 심리학을 쓴 올포트와 포스트맨은 소문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평균화, 강조, 동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즉, 어떤 형태로든 왜곡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환경은 어떠한가? 디지털에서 시작된 소문은 저장된 상태로 유통된다. 휘발성이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왜곡하지 않는 이상 원본이 변할 경우는 없다. 중요한 것은 휘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새로운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또다시 유통된다. 과거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는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다.
선한 모티브
디지털 환경에서 꾸준하게 살아남은 소문은 모티브가 선하다. 어쩌면 소문의 기능 중 하나인 집단 규범의 형성과 확인 기능이 강해진 측면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이야기 속의 모티브와 자신의 가치관이 일치함을 타인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나 스티브 잡스의 유언이나 어느 항공사의 이야기는 개방된 SNS에서 많이 유통된다.
이야기 꾼이라면 자신의 이야기가 많이 오랫동안 유통되길 희망할 것이다. 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생산되고 사라지길 반복한다. 우리는 이미 콘텐츠 생산량이 콘텐츠 소비량을 초월한 콘텐츠 쇼크 영역에 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휘발되지 않고 어디선가 존재하는 이야기는 누군가에게서 발견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을 흔드는 콘텐츠라면 틀림없이 확산될 것이다.